설화 이야기

세 신수는 어디에서 왔을까

구미호와 까치와 해태. 셋은 원래 한 이야기에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설화에서 데려와 한 밤에 세워 둔 것입니다.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왜 하필 이 셋인가"였습니다. 퍼즐로서는 높이 뛰는 자·나는 자·힘센 자가 필요했지만, 그것만으로 캐릭터를 고르면 여우 대신 토끼여도 상관없어집니다. 셋이 각자 이미 갖고 있던 이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하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구미호 — 구슬을 가진 여우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이야기는 한국 전역에 퍼져 있지만, 게임이 빌려온 것은 그중 여우구슬 계열의 설화입니다. 여우가 입에 물고 다니는 구슬을 사람이 삼켜 버리면, 그 사람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우는 그 구슬을 잃고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구슬은 힘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삼킨 쪽은 얻고, 빼앗긴 쪽은 영영 그 자리에 남는다.

이 설화의 핵심은 요괴의 무서움이 아니라 간절함입니다. 구미호는 해치려는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게임 속 구미호는 셋 중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뛰지만 혼자서는 어떤 밤도 끝내지 못합니다. 앞서 나가는 재주와 혼자서는 닿지 못하는 처지 — 그 둘이 같은 캐릭터 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몽실이의 앞선 작품 여우구슬은 이 설화를 그대로 다룬 짧은 이야기 게임입니다.

까치 — 다리를 놓는 새

까치는 한국에서 오래도록 길한 소식을 물어 오는 새였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게임이 빌려온 것은 더 큰 쪽 이야기입니다 — 칠월칠석의 오작교.

일 년에 하루, 은하수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를 위해 까치와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 제 몸으로 다리를 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칠석 무렵 까치 머리가 벗겨져 있는 것은 그 다리를 밟고 지나간 자국이라고 했습니다.

까치는 건너는 자가 아니라 건너게 하는 자다.

이 한 줄이 게임 속 까치의 설계 전부입니다. 까치는 셋 중 유일하게 날 수 있어 어디든 혼자 갈 수 있지만, 정작 그가 하는 일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높은 종을 쪼아 남이 지나갈 문을 열고, 여의주를 물어다 남의 자물쇠에 넣습니다. 가장 자유로운 자가 가장 남을 위해 움직이는 구조 — 오작교의 마음을 규칙으로 옮긴 것입니다.

해태 — 불을 먹는 짐승

해태(獬豸)는 시비와 선악을 가린다는 상상의 짐승입니다. 옳지 못한 자를 뿔로 들이받는다 하여 예로부터 법과 정의의 상징이었고, 사헌부 관리의 흉배에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서울에서 해태는 또 하나의 일을 맡았습니다. 불을 막는 것입니다.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경복궁을 태운다는 풍수 때문에,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세워 그 불길을 누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금도 광화문 앞에 앉아 있는 그 석상입니다.

해태는 불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받아 두는 것이다.

게임 속 해태가 불기둥 앞에 서면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 안에 담깁니다. 그리고 그 불을 나르다가 차가운 화로에 옮겨 붙입니다. 막는 일과 옮기는 일이 같은 동작이 되는 것 — 이것이 해태의 설계이고, 게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규칙입니다. 그가 뛰지 못하는 것도 의도한 것입니다. 든든한 것은 대개 가볍지 않으니까요.

달문, 그리고 밤

각 밤의 끝에는 둥근 돌문이 서 있습니다. 보름달을 닮은 이 달문은 특정 설화의 물건이 아니라, 한국 정원의 원형 문(月洞門)과 절의 홍예문에서 형태를 빌려온 것입니다. 세 자리 중 하나라도 비어 있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배경이 밤인 이유도 같습니다. 한국의 옛이야기에서 요괴와 신수는 대개 밤에 움직이고, 사람은 밤에 길을 잃습니다. 게임 전체가 어두운 수묵의 밤인 것은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셋이 함께여야 하는 이유를 매 순간 화면이 말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밤을 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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